말없이 나를 닮아가는 차

 

이 차를 타고 있는 시간보다, 멈춰 있는 모습을 보고 있는 시간이 더 좋을 때가 있다. 주차장에 조용히 서 있는 모습. 아침 출근 전, 서둘러 나오는 내 눈앞에 펼쳐진 깨끗하고 묵묵한 실루엣. 먼지마저 차분히 내려앉은 차체를 손으로 한번 쓸어보면, 그동안 함께한 시간이 손끝에 느껴지는 듯하다.

이 차는 시끄럽지 않다. 고속도로 위를 120km로 달릴 때도, 좁은 골목을 빠져나갈 때도, 조용하게 움직인다. 마치 모든 감정을 조절하고 표현을 줄이며 ‘나는 괜찮아’라고 말하는 사람처럼. 그래서일까, 이 차를 타는 나는 예전보다 말이 줄었다. 운전하면서 괜히 라디오를 틀거나 전화를 걸던 습관도 점점 사라졌고, 혼자 있는 시간을 그저 있는 그대로 받아들이는 일이 익숙해졌다.

비가 오는 날이면 더 그렇다. 와이퍼가 일정한 리듬으로 창을 훑고, 도로에 쌓인 물을 미끄러지듯 지나갈 때, 나는 그저 핸들을 잡은 채 아무 말 없이 음악을 듣는다. 그런 순간엔 이 차가, 단순한 기계가 아니라 나의 무언가를 아주 잘 이해하고 있다는 착각마저 든다.
'운전 중인데, 감정이 정리된다'는 기분을 누가 알까.

테슬라 모델 Y 퍼포먼스를 처음 선택한 이유는 단순했다. 빠르니까. 조용하니까. 좋아 보이니까. 하지만 시간이 지나며, 나는 점점 더 이 차에 감정적으로 젖어 들었다. 물리적인 기능이나 속도 같은 건 금방 익숙해진다. 진짜 깊어지는 건, 그 안에서 만들어지는 일상의 섬세함이다.

처음 충전하던 날은 아직도 기억난다. 충전소 앞에 멈춰서 케이블을 연결하고, 그저 기다리던 시간. 익숙하지 않아서 불편했지만, 그 시간이 조금씩 좋아지기 위해 시작했다. 아무것도 하지 않고 기다릴 수 있는 여유가 있다는 게, 참 좋았다.
요즘은 일부러 충전이 필요할 때까지 기다린다. 그 시간이, 생각보다 소중하니까.

차를 타고 멀리 떠나는 것도 좋아하지만, 난 이 차와 함께 보내는 평범한 시간이 더 소중하다. 출퇴근길, 잠깐 들른 카페 주차장, 아이를 기다리며 학교 앞에서 보낸 10분. 그런 작고 짧은 순간들이 쌓이고, 그 위에 내 하루가 만들어진다. 이 차는 늘 조용하게 거기 있었다. 언제나 같은 자세로, 같은 반응으로, 나를 태우고 또 내려놓았다.

사람들이 "테슬라는 어때?"하고 물을 때, 한마디로 답하기가 어렵다. 좋다. 아주 좋다. 그런데 그게 마트에서 세일하는 물건처럼 기능 대비 가격을 따져서 나오는 감탄은 아니다. 그냥, ‘나를 더 나답게 만들어주는 물건’이라는 감정이 더 가깝다.
내가 조용한 걸 좋아한다면, 이 차는 나보다 먼저 조용해졌고. 내가 쉬고 싶을 땐 먼저 정지해 있었다. 꼭 필요한 말만 주고받는 친구처럼, 이 차와 나는 그렇게 가까워졌다.

이 차에 관해 이야기하려면 자꾸 내 이야기로 돌아온다. 그게 신기하다.
어떤 기계가 사람을 이렇게까지 돌아보게 만들 수 있을까.

이제 나는 이 차를 ‘타는 사람’이 아니라, ‘함께 있는 사람’이라고 생각한다.
그건 단순히 감정의 투사가 아니라, 진짜로 그렇게 느껴진다. 이 차를 타며 생긴 수많은 루틴, 바뀐 습관, 편안해진 호흡까지. 이 모든 게 차의 기능으로 설명되지 않는다.
테슬라는 그런 차다. 기능을 넘어, 감정과 연결되는 차.
그리고 나는 그 연결 안에서, 내가 어떤 사람인지 더 잘 알게 된다.